배한동(가명) 씨는 지난 5월 중고차사이트에서 가격이나 성능 모두 마음에 드는 중형 세단을 발견한 뒤 차를 사기 위해 해당 중고차딜러를 찾았다. 딜러는 작은 접촉 사고가 있어 범퍼만 교환했을 뿐 다른 곳은 문제없다고 했다. 잠시 시운전해보니 성능도 괜찮은 것 같아 보험개발원 카히스토리(자동차이력정보서비스)를 통해 마지막으로 자동차보험으로 처리된 사고는 없는 지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딜러가 차가 괜찮은데 굳이 5000원을 주고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하냐고 하면서 문제 있으면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호언장담했다. 딜러가 미심쩍어진 배 씨는 다음날 계약하겠다며 그 자리를 빠져나와 카히스토리를 해당 차의 사고내역을 조회하자 차 값의 2분의 1에 달하는 수리비와 전손 1건이 나왔다. 폐차돼야 할 차를 1000만원을 주고 살 뻔했던 것이다.
교통사고나 침수 등으로 폐기처분돼야 하는 전손차가 정상적인 중고차처럼 위장돼 중고차시장에 흘러들어오고 있다.
전손차는 자동차보험의 대물 또는 자기차량손해 사고로 수리비 등이 차값보다 많이 나왔을 때 수리 대신 중고차시세나 보험개발원의 차량기준가액을 기준으로 피해자나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고 보험사에게 소유권을 넘긴 차다.
대개의 경우 차량가액의 90%가 넘는 수리비가 들어 폐차하는 게 정상인 차다. 보험사는 이 차를 경매 처리하는 데 주로 폐차업체나 중고부품업체 등에 가져간다. 이렇게 처리되는 전손차는 연간 6만여대 수준이다. 지난 2009회계년도의 경우 5만8000여건이 전손처리됐다.
문제는 전손차들이 사고 사실을 숨긴 채 중고차시장으로 흘러들어와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하는 데 있다. 전손처리 사실을 밝히면 상관없지만 악덕 중고차딜러나 무허가 수리업체 등이 수리사실까지 숨기거나 겉만 그럴듯하게 고친 채 정상적인 중고차로 팔아 폭리를 취한다.
사고 사실을 감춰주는 ‘무빵 작업’를 할 경우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고, 잠시 동안의 시승만으로는 문제를 파악할 수 없어 자동차 전문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이 주로 당한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침수된 차도 ‘물 먹은 사실’을 감춘 채 종종 시장에서 나오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소비자들이 속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피해예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과거에 보험으로 처리된 사고 내역, 영업용이나 렌터카 사용 이력, 침수나 도난 등의 여부 등을 알려주는 카히스토리(www.carhistory.or.kr)를 이용하면 된다. 여기에 중고차시장에서 차를 계약하기 전에 매매업체가 반드시 발급해야 하는 성능 및 상태 점검기록부까지 챙기면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이 좀 더 쉬워진다.
나해인 보험개발원 정보서비스 부문장은 “보통 여름휴가철을 앞둔 6~7월에 중고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는 것을 노려 일부 악덕 업자들이 장마철 집중호우로 침수된 차나 사고로 폐차할 차를 정상적인 차처럼 속여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고차를 거래하기 전 딜러에게 카히스토리 조회 내역을 알려달라고 하거나 인터넷으로 직접 조회하면 전손차 사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최기성 기자